
30년 전에도 길을 물었다
어디로 가야 길이 보일까.
우리가 가야 하는 길은 어디에서 출렁이고 있을까.
2026년 장사익 소리판의 제목은 〈길〉이다. 이번 소리판은 김준태 시인의 시 「길」에서 출발한다. 사람 속에서 길을 잃고, 다시 사람 속에서 길을 찾다가 마침내 우리가 저마다 달고 다니는 몸이 곧 길임을 깨닫는 시다.
장사익의 삶도 그랬다.
그는 자신의 길을 찾기까지 오래 걸렸다. 여러 직업을 전전했고, 이 길인가 싶으면 저 길로 돌아섰다. 남들보다 한참 늦은 나이에 비로소 노래 앞에 섰다.
1994년 예(藝)소극장에서 첫 공연을 열었다. 그 공연의 제목이 〈하늘 가는 길〉이었다. 그의 노래 인생은 처음부터 ‘길’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노래의 길을 걸은 지 30여 년. 장사익은 다시 〈길〉이라는 제목을 꺼내 들었다.
그때는 길을 찾는 사람이었다.
지금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이번 무대는 지나온 세월을 정리하는 회고의 자리가 아니다.
길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아직 길 위에 있다.
그래서 장사익은 다시 묻는다.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어디까지 왔는가.
그리고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하늘 가는 길〉에서 〈길〉까지 1996년에서 2026년. 꼭 30년이다.
1996 〈하늘 가는 길〉 2026 〈길〉
서른 해 전에도 길을 물었고, 서른 해가 지난 지금도 길을 묻는다.
장사익의 노래에는 처음부터 길을 찾는 사람의 마음이 있었다.
〈여행〉에는 떠나는 사람의 길이 있었고, 〈이게 아닌데〉에는 지금 서 있는 곳이 자신의 자리가 맞는지 되묻는 사람의 망설임이 있었다.
장사익의 노래 속 사람들은 좀처럼 반듯한 대로를 걷지 않는다. 헤매고, 돌아가고, 주저앉았다가 다시 일어난다.
장사익 자신이 그렇게 살아왔다.
음악인의 길을 단번에 찾아온 사람이 아니었다. 세상 속을 돌고 돌아 마흔이 훌쩍 넘어서야 자신의 목소리를 세상에 내놓았다.
그래서 장사익에게 헤맨 만큼 길이 생겼고, 돌아간 만큼 노래가 깊어졌다.
젊은 날의 장사익에게는 “이게 아닌데”라는 물음이 있었다면, 지금의 장사익은 김준태의 「길」에서 새로운 말을 만난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길이 어디 먼 곳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지금껏 살아온 자신의 몸과 함께 살아온 사람들 속에 있었다는 것을.
지나온 길, 그리고 남은 길
1949년생 장사익.
이제 한 사람의 생으로 보아도, 한 예술가의 생으로 보아도 지나온 길을 굽어볼 만한 자리에 섰다. 하지만 예술가에게 나이는 도착을 의미하지 않는다.
시간이 쌓일수록 더 높이 지르는 소리보다 더 깊이 내려놓는 소리가 중요해진다. 더 많은 기교보다 한 번의 호흡, 한 마디의 진실이 중요해진다.
그의 음악에는 우리 민족의 한(恨)이 깊게 배어 있지만 절망에 머물지 않는다. 슬픔을 신명으로, 상처를 위로로 바꾸고 개인의 기억을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확장한다.
가식 없는 생각과 꾸미지 않은 삶이 녹아 있다가 어느 순간 화산처럼 터지는 그의 노래에는
사람의 마음을 어루고 다독이는 따뜻함이 있다.
길을 잃어본 사람이 길 잃은 사람을 알아보고, 울어본 목소리가 우는 사람의 마음을 알아본다.
그것이 장사익의 소리다